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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내분 사회, 헌법 정신에 길을 묻다

여성·아동·환경·동물…“헌법에 권리명시, 공존의 미래 그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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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2021.06.24 16:03:08 ( 수정 : 2021.09.23 14:28:3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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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  그래픽 = 권호영 기자

 

묻는 말에 척척 대답하고, 대신 자동차를 운전해 주는가 하면 집까지 구석구석 청소해 준다. 20년 전 개봉한 영화 ‘에이아이(A.I.)’가 현실이 된, 2021년 인공지능(AI)의 현주소다. 그만큼 인간은 편리해졌지만, 인간의 터전인 환경은 불편해졌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2016년 이미 “OECD 국가 가운데 한국의 대기오염으로 인한 조기 사망률이 가장 높을 것”이라 전망했다. 북극의 상징과도 같았던 북극곰은 멸종 위기에 놓인 지 오래다. 전문가들이 “소모적 내전을 넘어 전 지구적 ‘공존의 미래’를 그려야 할 때”라고 입을 모으는 이유다.


문화일보 창간 30주년 특집 기획 ‘내분 사회, 헌법 정신에 길을 묻다’는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극과 극’으로 분열한 대한민국 공동체에 공존의 미래로 가는 길을 제시하고자 기획됐다. 이는 익숙해졌기에 소중함을 잊었고, 알면서도 외면해 온 ‘공존의 규칙’ 헌법 정신이 이 원대한 도전의 씨앗이 될 것이란 기대를 바탕으로 한다. 하지만 1987년 마지막 개정 이후 34년, 현행 헌법이 담지 못했으나 우리 사회에서 비중 있게 다뤄야 할 이슈들이 쌓이고 또 쌓였다.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지만 ‘지금’은 심도 있게 논의해야 할 ‘미래’의 가치들이다.

◇헌법의 타자, 여성과 아동 =‘36세 당수’ 이준석 국민의힘 신임 당 대표의 등장으로 정치권이 연일 들썩이고 있지만, 여성계는 다른 의미로 그의 행보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그가 전당대회에서 ‘여성 할당제 폐지’를 주요 공약으로 내세웠기 때문이다. 할당제와 같은 제도적 도움을 주기보다는 경쟁의 환경을 공평하게 조성해, ‘능력대로’ 평가하자는 것이 이 대표 주장의 골자다. 하지만 21대 국회에서 여성 의원은 300명 중 57명(19%)에 불과하다. 지난해 기준 국내 상위 200대 상장사의 등기 임원 1441명 중 여성은 65명으로, 전체의 4.5%로 집계된 결과(기업평가사이트 ‘CEO스코어’)도 나왔다. 여성의 능력 부족 때문이라고만 설명하기는 어려운 현상이다.

선진국들은 여성의 정치참여를 포함한 양성평등을 헌법에 적극 반영하고 있다. 1999년 개정된 프랑스 헌법 제1조 2항은 ‘법률은 남성과 여성이 선출직 및 그 임기 그리고 직업적, 사회적 책무에 동등하게 접근하도록 한다’고 적시했다. 이를 기반으로 2000년 남녀를 동일한 비율로 공천하라는 남녀 동수법도 제정됐다. 남녀 양쪽에 ‘기회의 평등’을 보장하자는 취지로, 이를 어기는 정당의 국고보조금은 삭감된다. 캐나다도 헌법 제28조에 ‘헌장에 인용된 제반 권리 및 자유는 남성과 여성에게 동등하게 보장한다’며 양성 평등을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의 헌법은 ‘혼인과 가족생활은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평등을 기초로 성립되고 유지돼야 한다’(제36조)며 가족관계에서의 양성평등만 규정한 정도다.

‘정인이 사건’ ‘경북 구미 3세 여아 사망 사건’ 등으로 아동의 권리 역시 우리 사회의 쟁점이 됐다. 아동 역시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누려야 하지만, 부모의 그늘 아래 권리주체 대상으로 여겨지지 않는 경우가 빈번하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이효원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아동 청소년들은 너무 많은 폭력에 노출돼 있다. 물리적 폭력뿐 아니라, 부모의 ‘나는 너를 바라보고 산다’와 같은 발언 역시 일종의 정신적 폭력”이라고 꼬집었다. 이 교수는 “본인 이름에 만족하냐”며 “내가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불리느냐 역시 중요한 헌법적 권리인데, 부모님이 짓는 것이 과연 맞는가”라는 물음도 던진다. 아동권에 대한 근본적이고 포괄적인 논의가 필요하단 의미다.

◇자연·동물에게도 권리가 있는가 = 프랑스 국회는 지난 3월 헌법 1조에 기후위기 대응, 생물 다양성 보전, 환경보호를 의무로 규정한 헌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국제사회의 온실가스 감축 기조에 발맞춰 좀 더 적극적으로 환경 이슈에 대응하겠다는 의지다. 우리 헌법에도 ‘모든 국민은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를 가지며, 국가와 국민은 환경보전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환경권 조항이 있다. 하지만 한국은 수년 전부터 국제사회에서 ‘기후 악당(Climate villain)’이라는 오명으로 불리고 있다. 국가적 목표에 대한 구체적인 규정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안병진 경희대 미래문명원 교수는 21일 “2050년까지 탄소 중립화를 구체적으로 이행해 나가지 못하면, 국가 경쟁력에 심각한 타격이 올 것”이라며 “국제사회에서 ‘왕따’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반려동물과 함께 사는 가구가 늘어나면서 동물의 권리 역시 정치적·법적 영역으로 넘어왔다. 한국에서도 동물보호법이 시행되고 있지만 동물 학대 행위에 대한 처벌 수위는 미미해, 헌법의 영역으로 끌어올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독일이 이미 헌법 20조에 ‘국가는 미래 세대를 위한 책임으로서 … 행정과 사법을 통해 자연적 거주지와 동물을 보호한다’며 동물을 보호할 의무를 규정해놓는 등 선진국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2018년 문재인 대통령이 제출한 개헌안에도 ‘국가는 동물 보호를 위한 정책을 시행해야 한다’는 조항이 들어 있었지만,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폐기됐다.

◇AI 시대 대비도 필요 = “인류를 파멸시킬 것이다(I’ll destroy humans.)” 2016년 AI 로봇 소피아가 그를 개발한 데이비드 핸슨 박사와의 대화 중 내놓은 말이다. 여배우 오드리 헵번 등의 얼굴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소피아는 사람과 눈을 맞추고 눈을 깜빡이는 것은 물론 60여 개의 감정을 표현한다. ‘인류 파멸’ 같은 농담도 할 줄 아는 고차원적 로봇이다.

또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소피아의 제조사인 핸슨로보틱스는 지난 1월 소피아를 비롯한 AI의 대량 생산을 예고했다. 자율주행차 수준을 훌쩍 넘어서는 AI의 등장이 머지않았다는 의미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사람처럼 대화가 가능한 휴머노이드 로봇이 점점 더 주목받고 있다. 사회적으로 고립된 채 혼자 지내는 이들의 말동무이자 가사 도우미 등으로 자리 잡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AI가 인간의 일자리를 대체하면 그동안의 인권과 기본권 개념이 달라질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권혁주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AI로 인해 노동시장에 참여하지 못하는 새로운 성격의 사회적 소외계층이 생겨날 수 있다”며 “현재 공무원들이 판단하는 일을 AI가 하게 된다면, 그 과정에서 국민이 자기의 권리를 따져야 하는 문제들이 발생할 것”이라고 했다. AI가 어떤 문제에 대한 결과를 제시할 순 있지만, 인간처럼 그 과정을 설명하거나 부득이한 경우에 대한 정상참작을 할 순 없지 않겠냐는 의미다.

자율주행차를 비롯한 로봇에 대한 법적 책임을 어떻게 부과할지, AI에게 세금을 부과하거나 국가적 의무를 부여할 수 있는지 등도 논란거리다. 실제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소피아에게 시민권을 부여한 뒤 사우디 여성이라면 착용해야 하는 히잡을 씌워야 하는 것 아니냐는 논란이 일기도 했다.

김현아·최지영 기자



◇도움 주신 분들(가나다 순)

강성진(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강원택(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고문현(숭실대 법학과 교수)
권혁주(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김선택(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김종철(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박명호(동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박상훈(정치발전소 학교장)
서기석(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석좌교수)
성낙인(서울대 명예교수)
송호근(포스텍 석좌교수)
안병진(경희대 미래문명원 교수)
이효원(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장영수(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채진원(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교수)
최장집(고려대 명예교수)

 

◇특별취재팀


오남석(문화부)·민병기(정치부)·박준희(특별기획팀) 차장, 임정환·박세희(이상 국제부)·김현아(정치부)·최지영(사회부) 기자 

출처: 문화일보(2021.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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